사회적 감수성, ESG감수성 의 뜻
오늘은 ‘ 감수성’ 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 ‘감수성’이라고 퉁 치기는 했는데, 자세히 말하면 사회적 감수성 ESG감수성 등으로 뭐 다양하게 불리더라고요.
어려운 단어가 나왔으니 먼저 설명해볼게요. ‘ESG감수성’ 이 뭐냐?
성인지 감수성 들어보셨죠? 성에 대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인지할 수 있는 민감성을 이야기해요.
이곳을 클릭하면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네이버 지식백과 설명으로 넘어갑니다!
그것을 ‘성’의 영역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 확대한 것을 사회적 감수성이라고 합니다. 말했다시피 요즘은 ESG감수성 이라고 하더라고요.
E ( environmental 환경적인), S (social 사회적인), G (governance 지배구조) 에서 각 단어의 첫 음을 따서 만든 게 ESG인데요. 개인적으로 이렇게 막 영어이니셜로 어쩌고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뭐 다들 그렇게 쓴다니 써야죠. 어쩔 수 있나요.
암튼 환경문제, 성문제 포함해서 사회의 어떤 면을 봤을 때, 어, 이거 맞나? 이거 좀 아닌 듯?? 라는 생각이 드는 걸 사회적 감수성이라고 합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볼까요? 옛~날에 TV 개그쇼에서 그런 게 많았잖아요. 온 얼굴을 다른 색으로 칠하고 나와서 다른 인종 흉내를 내며 사람들을 웃기는 거요. 지금은 돌 맞을 짓이기는 한데요. 당시에는 그걸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런 걸로 웃기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지요.
하지만 분명 이렇게 생각하는 소수가 있긴 했을 거예요. “혹시 그들이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
그런 분들은 사회부조리, 불공정에 민감하신 분들이고, 그런 분들을 ‘ESG감수성’ 이 높다, 고 표현하는 거죠.
쉽죠?
말을 어렵게 늘어놔서 그렇지, 그렇게 어려운 개념은 아닙니다.
‘사회적 감수성’ 이 제로라는 것
갑자기 웬 사회적 감수성 타령이냐?
공감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공존을 위해 스스로의 의식 제고를 위한 깊고도 통찰력있는 사고의 끝에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으며 그것을 공유하기 위해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다..
라고 이야기하고는 싶은데 절대 그렇지는 않고요ㅋㅋㅋㅋ
사실 별 이유는 없어요. 며칠 전에 제가 운동중이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옛~날에 봤던 영화가 생각이 나는 거예요. 제목은 기억이 안나요. 깡패들이 나오는 영화였는데..
아무튼 영화에서, 그 깡패들 보스의 와이프(인지 여자친구인지)가 갑자기 시를 배우고 싶다고 조르거든요. 그래서 보스가 문학 과외선생을 한 명 구해준단 말이에요? 그런데 시를 배우면서 이 여자가 남자 문학선생한테 반해요. 그래서 덮쳐요… 그런 후에 화면이 전환되는데. 아시죠? 뭔가(?)가 지나간 후에 짐작할 수 있는 그런 화면? 남자가 옷이 벗겨진 채 흐느끼고 있고, 여자가 담배를 피며 위로하는(?) 그런 장면.
그 남자 문학선생은 명백하게 관계하기 싫어했었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뭐 여러가지 이유로 여자를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억지로 일을 치룬건데요. 따지고 보면 강간이란 말이죠.
만약 남녀의 역할을 바꿨다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상황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남자가 여자에게 당하고, 여자와 남자의 역할을 바꾸면서 오히려 약간 코믹하게 그려졌단 말이에요? 여기서 의문이 생기잖아요. 여자 남자 역할을 바꾼 것만으로 비극이 희극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이 정당한가?
물론 이 영화가 미러링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 비꼬고 싶었던 의도가 있었다던가 뭐 그랬다면 다르게 읽힐 수도 있었겠으나. 20년도 더 전이거든요. 당시의 저는 딱히 그런 종류의 뉘앙스를 읽어내지는 못했고, 영화의 코믹 요소라고 생각하고 지나갔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웃기도 했었고요.
눈치채셨겠지만,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그야말로 사회적 관습의 총체이며 지극히 기득권적 타성에 젖어 키워진 헌나라의 어른이란 말이죠. 사회적 감수성이 제로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일단 우리 엄마 아버지가 그냥 관습속에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이었고요. 특히 우리 엄마는 저를 굉장한 모범생으로 키우셨어요. 그게 뭘 뜻하겠어요? 사회의 모든 규율에 의문을 갖지 않고 잘 따르는 착한 어린이였다는 뜻 아니겠어요? ㅎㅎㅎ
문제는 이 ‘의문을 제기하는 능력’이 바로 ‘사회적 감수성’ 을 뜻한다는 거죠. 즉 저는 사회적 감수성 제로인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ESG감수성’ 이 없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과거형이란 얘기죠.
네, 성장하고 있다는 소리겟죠?ㅎㅎ 눈곱만치 자란 것도 일단, 자란 거라고 해두죠.
저 영화의 저 장면을 특히 기억하고 있는 건 제가 특별히 문란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요.(아닙니다!)
저 장면에서 음? 하고 느꼈던 것을 나중에 제 친구한테 물어봤었던 말이에요?
“친구야, 남자도 강간당하면… 싫겠…지?”
그 때 친구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끓는 물에 손을 넣으면 아프겠지? 뭐 이런 질문을 들은 사람같은 표정을 지었고요. 그런 표정으로 얘기하더라고요. “당연하지!!” ㅋㅋㅋㅋ
일단 욕 하기 전에 들어보세요.
첫째, 전 어렸고요.
둘째, ‘남자는 신체적 욕구에 약하고 성적인 행동을 즐기도록 설계되어 있기때문에, 주기적으로(?) 빼주지 않으면(??) 성충동이 강해지고 따라서 여성들은 그것을 자극할만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믿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었어요.
다행히 완전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소리가 ‘강간의 책임을 여자에게 묻기 위한 면피’라는 것을 인지하기는 했습니다만. ‘남자는 육체적 욕구가 강해서 성적 행위는 무조건 좋아해. 심지어 강간을 할 정도로’ 라는 기본명제에서는 빠져나오지 못했던 거죠.
따라서 ‘남자는 비록 강간당했지만 육체적 쾌락은 느꼈을 거고, 그럼.. 좋았던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데…
아, 쓰고 보니 남자 강간범이 여자한테 하는 말이랑 비슷해서 더 소름끼치네요. (“너도 즐겼잖아?”)
아무튼 그래요. 감수성 제로인 저는 이렇게 학습을 통해 성장했답니다.
중요한 건 이거예요. ‘학습’한다는 거.
‘ESG감수성’ 은 학습의 결과
그러고보면 ‘감수성’이라는 단어를 대체 왜 붙였는지 모르겠어요. ‘감수성’이라하니 감정의 영역같고 예술가들이나 가져야 할 형이상학적인 무언가처럼 느껴지잖아요.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가지고 태어나는 무언가처럼 느껴진단 말이죠.
하지만 ‘사회적 감수성’은 그런 게 아닙니다. 그건 아까 말했듯이 사회의 어떤 면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능력’을 뜻하고 학습없이는 성장할 수 없는 능력입니다.
제가 백 번 죽었다가 깨어나도 피카소의 천재성을 닮을 수는 없겠지만, ‘ESG감수성’ 은 학습으로 인해 계발되기 때문에 노력 여하에 따라 사회학자들만큼의 문제의식은 가질 수도 있는 거죠.
감수성 말고 뭔가 다른 단어도 있지 않았을까요? 뭐.. 사회적… 반응 민감도? 아 모르겠네요. 이름짓는 거엔 젬병이라ㅋㅋㅋㅋ
아무튼 중요한 건 뭐다? 배워야 한다! ESG감수성 은 지식이다! 그것이 제로라면, 머리에 구겨넣어야 한다! 라는 겁니다.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합니다. 아이를 너무 착하게 키우지 마세요. 왜? 라고 귀찮게 의문을 제기할 줄 아는 아이가 좋은 거예요.
거꾸로 생각하면 온실같은 환경에서 곱게 키워진(?) 저에 비해서, 그 친구는 뭔가 의문제기가 가능한 환경에서 자랐고, 그런 문화를 좀 더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저를 그렇게 ‘이상한 거 보는 표정’으로 쳐다볼 수 있었던 거거든요.
그렇게 ‘이상하게 쳐다볼 줄 아는 애’로 키워야 하는 겁니다ㅋㅋㅋㅋ
운동을 하는 제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우리 애를 보다가 갑자기 생각이 들더라고요. 과연 나는 ‘그 친구’같은 환경에서 우리 애를 키우고 있나? 하는 생각이.
잘 하고 있나 모르겠는데, 일단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ㅎㅎㅎ